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도 타카토라 (문단 편집) == 평가 == 대세를 따라 주군을 수없이 바꾸어 섬긴 인물로, 주군을 바꾸는 것이 일상적인 전국시대의 분위기에서조차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현대 일본에서는 무사를 소위 '''샐러리맨'''에 비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사고방식에 입각하면 이해가 쉽다. 그는 능력을 인정받고 여기저기 경력직으로 불려다니며 그때마다 몸값을 올려 받은 풍운아와 같은 케이스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세가 판가름 났을 때 주군의 뒤통수를 때린 적은 없었고 임관하고 있는 가문에 뭔가 일이 있을 때에는 한눈 팔지 않고 성실히 일했다. 때문에 오히려 전주인으로부터 감사장이나 추천장을 받고 나올 정도였고 새 주군으로부터 의심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감사장(感状)이라고 불리는 표창장 문화로,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타 가문으로 소속을 옮기는 일이 빈번하던 전국시대에는 직장인의 추천장과 비슷하게 해당 가문에서 활약했다는 것을 인정받고 원만하게 이직하는 데 쓰인 것으로 보면 무방하다.] 다만 실력 좋은 --경력직-- 신참이 들어오니 오랫동안 가문을 섬겨온 고참들의 견제와 디스가 좀 심한 편이었을 뿐... 그리고 아무리 실력주의에 주군을 수없이 바꾸는 것이 일상적인 전국시대라고 하여도 위급한 때에 기존의 주군을 버린다던가 뒤통수를 때린다던가 하는 일은 암묵적인 금기로 여겨졌고[* 그 사례로, 주군인 [[다케다 카츠요리]]가 쫓기고 있을 때 제 살겠다고 그를 추격한 오야마다 노부시게는 포상을 받기는커녕 [[오다 노부나가]]의 맏아들인 [[오다 노부타다]]에게 붙들려 '천하에 다시 없을 불충한 자'라는 죄명 하에 목이 잘렸다. 정당하게 소속 가문을 바꾸는 것과 배신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며, 그 때문에 현대의 샐러리맨처럼 이력서나 추천장의 성격으로 감사장을 써 주는 것이다.][* 배신을 하지 않더라도 허락을 받지 않고 무단 탈주하거나 주인과 다투는 등 원만하지 않은 퇴직을 할 경우 '호코카마이(奉公構)' 처분을 받아 다른 가문에 블랙리스트가 나돌게 되고, 재임관(재취직)에 지장을 받게 되는 일이 잦았다. 도요토미 정권이 천하를 통일한 후에는 이것이 아예 공식적으로 법제화되었다.] 이런 일을 행한 뒤에는 십중팔구 매장당하거나 새 주군을 섬긴다 해도 찬밥 취급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에 토도가 신중했던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타카토라가 받아들여진 이유는 그가 장수로서 매우 뛰어났기 때문이다. 축성술을 비롯해 지상전에서도 유능했는데 임진왜란에서 수군을 지휘할 정도로 수상전까지 무난히 수행이 가능한 '''육상, 수상 전부 운용이 가능한 만능형 장수'''였다. 이렇기에 타카토라는 히데요시와 이에야스가 다스리는 일본에서도 중용되었다. 타카토라 자신은 이에 대해서 부끄러움보다는 오히려 긍지를 가지고 있었던 듯한데, 이는 타카토라가 남긴 말에서도 알 수 있다. >'''"주군을 7번 바꾸지 않는다면, 무사라고 말할 수 없다."'''[* 사실 이 말은 실리적으로도 당대 관점상 아주 의미가 없지는 않다. 주군을 7번이나 바꿀 정도라면 새 주군에게 호의를 쉽게 얻기 힘들텐데도 주군이 써줄 정도라면 반대로 해당 무사의 실력이 제법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 즉 달리 말하면 무사라면 주군을 7번 바꾸며 바꿀 때마다 실력에 대한 신뢰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도 치환될 수 있다. 그가 주군을 바꿀 때마다 새 주군은 그의 이력을 다 알고 있을텐데 한번이라도 배신이나 치명적인 실수 혹은 잘못을 발견했다면 써주지 않았거나 재임관시의 조건이 이전보다 나빠졌을 것이지만 자신은 계속 좋은 조건으로 임관되었다는 뜻이니, 어떤 의미에선 타카토라가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돌려 말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현대로 치면 난 7번이나 이직했는데도 그 때마다 고위직에 높은 연봉 받았다고 자랑하는 거다.~~] >'''"자신이 어느 편인지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야말로 지조다."'''[* 이 역시도 의미가 있는 말로 앞서 나온 주군을 7번이나 바꾼이라는 말은 다시 말하면 7번이나 바꿀 정도로 주군들이 자신을 써줬다는 의미인데 이 과정에서 '''실력'''은 물론 '''신뢰'''도 중요시된다. [[여포|실력은 있지만 믿을 수 없는 사람]]은 그 능력 덕에 처음에는 써주는 사람이 있지만 결국은 모두에게 외면받지만(그렇다고 말단직이나 맡기자니 능력이 아깝다.) [[관우|실력도 있고 신뢰도 있는 사람]]은 설령 적대관계라고 해도 실력에 신뢰까지 있어서 믿고 써줄 수 있다. 즉 '내가 주군을 바꿨지 배신을 했냐?' 뉘앙스의 말.] 한마디로 중국사의 처세술의 달인이었던 [[가후]], [[풍도]]같은 인물. 하지만 이러한 사실로 인해 역사소설 등에서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인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훗날의 일이지만 [[메이지 유신]]이 일어날 무렵 토도 타카토라의 후손인 토도 타카유키(藤堂高猷)는 조정군과 막부군 최대의 전투인 토바 후시미 전투에서 '''가장 처음으로 막부군을 배반했다.''' [[에도 막부]]에서는 "전투가 일어나면 선봉은 히코네의 이이 가문과 이세의 토도 가문."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에야스의 창업공신인 [[이이 나오마사]]의 후예들 동급의 대열로 붙였다는 점에서 당시 토도 가문에 대한 막부의 대우가 어땠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때는 형세가 불리해지자 잽싸게 그런 대접을 해 준 막부를 배반하고 조정군 쪽으로 돌아선 것. 이를 두고 막부 쪽 사람이든 유신지사든 누구를 막론하고 '''"제 조상 버릇 어디 가나"'''라며 비웃었다고 한다. 그 정도로 타카토라에 대한 이미지는 당시부터 좋지 않았다는 소리. 그러나 최후의 양심은 있었는지 이에야스의 무덤인 [[닛코]](日光)[* 당시 [[시모츠케]]국.]의 닛코 동조궁을 포격하라는 명에도 "타카토라공이 곤겐님(이에야스)께 입은 은혜가 있다"며 끝까지 거부했다고 한다. 상술했듯 토도 타카토라는 닛코 동조궁 건축을 담당했고, 현재 [[도쿄도]] [[다이토구]]의 우에노 공원에 있는 우에노 동조궁(上野東照宮)[* 쿠노산, 닛코의 것과 함께 3대 동조궁이라고 불린다.]도 그가 지었으니 포격을 했다간 조상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격이 되기에 거부할 만 했다. 어찌되었든 여러 주군을 섬긴 인물답게 여러 싸움에 참가하였다. 시즈가타케 전투, [[사이카슈]] 정벌, 큐슈 시마즈 정벌, [[임진왜란]], [[정유재란]], 아이즈 우에스기 정벌, [[세키가하라 전투]] 및 오사카 겨울, 여름 전투까지 굵직한 싸움에는 해외를 막론하고 참가하였다. 공도 많이 세워서 말년에는 다이묘로서 32만석의 영지를 가지기도 했다. 단, 미묘하게 대전운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 세키가하라 전투 때는 [[오오타니 요시츠구]][* 나중에 요시츠구의 묘를 건립하여 주었다고 한다.], 오사카 겨울싸움 때에는 [[쵸소카베 모리치카]], [[모리 카츠나가]] 등과 붙어서 피해를 많이 보기도 했다. 그리고 임진왜란에서 [[이순신]]을 만나면서 대진운이 바닥을 찍게 된다.[* 여담으로 임진왜란 시기 토도는 엄밀히 말해 히데나가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야스의 가신 신분이었다. 다만 히데야스가 어리니 주군을 대신해서 군을 지휘한 것. 같은 경우로 [[나베시마 나오시게]] 역시 류조지 가문의 가신 신분으로, 당주를 대신해 임진왜란에 참여했다.] 일단 [[옥포 해전]]에서 이순신에게 첫 승리를 내줬고 임진년 해전에서 연달아 계속 털렸다. 단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지휘한 조선 수군을 전멸시키기도 했다.~~근데 이건 못이기는게 바보 아닌가.~~ 또한 [[명량 해전]]에서는 수군 총대장으로 참전했는데, 그냥 털린 게 아니라 비교적 안전한 후방에 있었을 총대장이 화살을 맞을 만큼 대패하는 굴욕을 당했다. 물론 이는 토도뿐만 아니라 이순신과 대전한 모든 일본 수군 장수들에게 공통된 운명. 최후로 섬긴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는 충성을 보이고 많은 공을 세워서, 주위의 대다수가 토도 타카토라를 믿지 않는 상황에서도 이에야스로부터 깊은 신뢰를 받았다. 소설 대망에서 죽음을 눈앞에 둔 이에야스가 히데타다와 대화를 하면서 경계할 만한 다이묘를 논하는데 히데타다가 시마즈, 다테 등을 얘기할 때는 "그럴 능력도, 상황도 안 된다"며 웃어 넘겼지만 타카토라를 거론하자 정색을 하며 "이즈미노카미(和泉守. 타카토라가 조정으로부터 받은 관직)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라며 즉시 동석시킬 정도[* 그러나 [[다테 마사무네]] 또한 이에야스로부터 상당한 신뢰를 받아 이후 쇼군들의 보좌역을 맡을 정도여서 토도가 다테보다 더 신뢰를 받았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당장에 이에미츠의 "나는 날 때부터 쇼군이다!" 선언도 그의 작품이라는 설이 있으며 사적으로는 이에미츠에게 굉장히 많은 신뢰를 받았다.]였다.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딸인 도쿠가와 마사코가 입궁할 때는 할복까지 불사한다는 태도로 입궁을 성사시켰다고 한다. 우수한 무장이면서도, 그보다는 지장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한 인물로 내정, 축성(유머를 섞어서 '축성 오타쿠'라고 불리기도 한다), 모략, 군사 등 모든 면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문학이나 노가쿠, 다도 등에도 능한,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